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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에 핀 꽃시와 함께 2024. 11. 19. 19:20
대청호 벼랑에 아찔한 바위 위에 가냘프게 핀 한 포기 이름 모르는 꽃그 노랑 빛깔에 눈이 부신다 단단한 바위에 떨어진 숙명의 씨앗그 험난한 환경에 웬만하면 일찌감치 삶을 포기하고 말았을 텐데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바위의 빈틈을 찾아 뿌리를 내리고 마침내 꽃까지 피웠다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서도 마음먹기에 따라 죽을 수도, 꽃을 피울 수도 있음을 작고 연약한 몸으로 직접 보여준 꽃이여 대청호를 바라보는 것도 좋지만 내가 너를 볼 수 있다는 것은 더욱 값지다 사람도 너처럼 바위에 떨어질 때가 있으니 뿌리 내리기 너무 어려워 더군다나 꽃 피우기는 더욱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 너를 보면 대청호 맑은 물에 절망을 깨끗이 씻을 수 있으리 너의 소담스런 꽃에서 알알이 열매를 맺어 더 좋은 곳으로 날려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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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 문학기행에세이, 칼럼 2024. 11. 13. 19:43
정지용 문학관 여행을 가는 날, 날씨가 맑았다. 전형적인 가을 날씨였다.어제까지만 해도 비가 오고 기온이 내려가 추울 것 같고, 비가 오면 어쩌나 했는데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셨는지, 고전문학반과 시작반을 사랑하시고 복을 주시는지 참으로 좋은 날씨를 주셨다. 정지용 문학관은 충북 옥천에 자리하고 있는데, 정지용은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 갔다 오면서 옥천을 지날 때마다 늘 생각이 나는 시인이다. 그의 시 는 그의 대표작이면서 노래로 불러져 더욱 유명하다. 그 노래 한번 배우고 싶어도 곡이 어려워서 입으로 흥얼거리기만 했을 뿐 제대로 불러본 적이 없다. 오늘 대청호 천상 정원 휴게소에서 이 를 부를 때도 입만 달싹거렸다. 너무나 토속적이고 향토적인 를 읽으면 내 어릴 적 고향이 생각나게 했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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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대봉산 모노레일시와 함께 2024. 11. 3. 21:48
등산하는 모노레일태어나고 처음 타 본다 저 작은 병아리 같은 것이 날씬하지 않는 장정 8명이나 태우고과연 저 가파른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처음에는 의심했다 출발하여 내리막을 내려가고 오르막을 올라갈 때 내려서 밀어야 되지 않을까 조바심이 났지만 웬걸단선의 레일 위를 한쪽으로 기울어지지도 않고 외줄 타는 곡예사보다 더 안정되게 힘차게 올라간다 정상의 바로 턱밑능히 80도가 되어 보이는 수직의 경사를 어찌 오를 수 있을까손만 놓으면 수천 미터 아래로 곤두박질할 것 같아 도리어 승객들이 손에 땀이 나는데 모노레일은 ‘걱정 마쇼’ 하는 듯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스파이더맨처럼 기어올라간다 마침내 정상위에서 내려다보는 통쾌함이것이 등산의 맛그러나 땀도 없이 올라온 우리는 은근히 부끄럽다내려올 때도 낭떠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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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간다시와 함께 2024. 10. 28. 17:39
팔공산이 머리에 빨강 노랑 물을 들이고아랫도리에 노랑 치마를 두를 무렵 더위가 하나도 섞이지 않는 아이스크림 같은 가을바람을 타고 ‘넓은 벌 동쪽 끝으로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얼룩백이 황소가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정지용 시인의 고향, 충북 옥천으로 우리는 간다 정지용이 나고 자란 초가집 생가를 돌아 보고정지용의 문학관에 들러 그의 시와 글에서, 사진으로 남아 있는 그의 모습에서 그의 마음과 향취를 ‘함부로 쏜 화살을 찾’듯이 찾아보련다 정지용의 시향(詩香)을 추석 보름달처럼 마음에 가득 채운 후 돌아오는 길에 고구려 아도가 세웠다는 너무나 단아한 대웅전 양쪽에 다보탑이 서 있고천 개의 다른 얼굴의 불상이 있는 직지사로 우리는 간다 돌로 변한 부처가 아니라 무너지고 불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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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냇물시와 함께 2024. 10. 12. 15:12
계곡 사이를 흘러가는 시냇물 정직해서 좋다흐린 물로 자신을 가리지 않아 속이 훤히 보인다속에 무엇이 있는지 다 알 수 있다 너무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항상 좋은 것일까때로는 가리는 것이 좋을 때도 있지만 흙탕물로가 아니라 수초로 살짝 가리면 얼마나 좋을까 맑은 물이 나는 너무 좋다 물이 맑으니 가까이 가서 손을 씻을 수 있고 자신을 풍덩 물속에 던질 수 있다자신을 몽땅 던져도 안심할 수 있다 겉으로는 넓고 아름다운 강들속을 알 수 없는 흐린 물정화하지 않고는 먹을 수 없는 거짓의 물주변에 너무 많다 잘못 먹었다간 죽을 수도 있는 물이 지금도 도도히 흐른다 흐린 물들을 바라보면서 맑은 시냇물이 더욱 그리워 일부러라도산골 맑은 시냇물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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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보름달시와 함께 2024. 9. 27. 21:31
세상에서 가장 밝은 달이날에 볼 수 있다 살지고 통통한 빠알갛게 익은 사과 같은 얼굴로 밤하늘 한가운데 떠억 떠서 자신이 태양이나 되는 듯 온 세상을 훤히 밝히는 한가위 보름달 사람들은 너를 보면서 너에게 소원을 빌지만 토끼 한 마리도 못 키우는 네가 그만한 능력이 없는 것을 알고 있는 나는너에게 소원을 기원하는 것이 아니라너의 크고 둥근 창을 통해 천국을 보고 싶다. 한가위가 되면휘영청 밝은 한가위 보름달을 바라보면서더욱 보고 싶은 천국에 계시는 부모님의 얼굴을, 그리고 사랑다운 사랑도 못해 보고 너무 일찍 가버린 아내의 얼굴을, 그리고 친척들과 지인들의 얼굴을너의 뻥 뚫린 그 구멍을 통해서라도 몹시 보고 싶다 정월 보름달보다 나는 한가위 보름달이 더 좋아 이 풍성한 계절 너무 생각나는 그리운 ..